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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테두리 안에서 살고 있다. 그 테두리는 외부와의 단절과 연결을 결정짓는 소통의 통로이다. 우리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맺을 때 그 사람의 단면적인 테두리를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한다. 그리고 그 관계가 지속될수록 다각도의 단면적인 테두리의 이면을 보게 된다. 한 사람의 모든 테두리의 이면을 봤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이해했다는 판단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거대한 인적 네트워크의 틀 안에서 눈에 보이는 테두리의 단면만을 직시하며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있어 진정한 소통을 위해 필요한 것은 어쩌면 테두리 내부의 그 무언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에는 각기 다른 7개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서로 다른 7개의 이야기는 모두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관계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 관계는 비슷한 가정에서 자란 두 소녀와 그 가족의 관계일 수도, 비슷한 아픔이 있는 가족 간의 관계일 수도,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니지만 그보다 애틋한 관계일 수도, 타지역에서 우연히 만난 관계일 수도, 하나뿐인 가족과의 관계일 수도 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다. 알아간다는 것은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이해하고 보듬어 주는 것이다. 하지만 평생을 같이 산 가족이라도, 비슷한 아픔을 가진 경험이 있더라도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인생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불가하다. 대부분의 삶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의 살아온 인생을 알아가고 그 사람에 대해 판단해야 할 때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 그 내면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서로의 유대가 필요하다. 끊임없이 얽혀있는 관계성 속에서 우리는 상처를 받기도 상처를 주기도 한다. 누군가에게 한없이 다정하고 착한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매몰차고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되는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또 새로운 관계 속에서 치유된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간 관계가 아예 소멸되거나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관계든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없다. 지나간 관계의 기억은 퇴적작용으로 지층이 쌓이는 것과 동일하게 모두 자신에게 쌓여있다. 그것이 잠깐 스친 찰나의 짧은 관계일지라도 무엇인가 형태를 남긴다. 관계에서 시간은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찰나의 시간일지라도 쌓인 지층의 깊이를 이해하는 진정한 공감과 위로가 전해진다면 우리는 테두리 단면 너머의 내부 그 무언가에 도달할 것이다. 보이는 것에 집중되어 각자의 테두리 안에 갇혀 내면의 무언가가 소실되어 가는 현시대의 관계성이 보이지 않는 내면의 그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바뀐다면 테두리의 단절성이 연결로 바뀌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눈물에는 떠난 이들에 대한 감미로운 애정이 담겨 있었다.
다 큰 성인이 되어서 아무런 조건 없이 누군가를 좋아하고 생활을 함께했다는 행복.
그 지속될 수도, 반복될 수도 없는 시간 속에서 함께 존재했다는 행복.
그 눈물은 고독이 없었던 시간에 대한 애도였다.’
- 쇼코의 미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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